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회원자료실식물
제목 앵두꽃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8-29
조회 2135
파일 79.jpg [91kb]

* 합리화 

 

처가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가지고 간다.

이는 처가집 세배는 늦게 가도 된다는 뜻이다. 세배는 정초에 하는 것이 상례인데, 처가의 세배를 앵두꽃이 피는 봄에 간다고 하니 예절이나 격식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처가에서는 이를 이해하고 크게 섭섭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초에 서둘러 처가에 세배 가려는 사람을 조롱할 때나 늦게 처가에 세배 가는 것을 합리화할 때 쓰인다.

 

 

* 역사

 

앵두는 앵도 또는 함도(含桃)라고도 했는데 『동의보감』에는 함도는 백과(百果)중에서 제일 먼저 익으므로 옛사람들이 아주 귀하게 여겨 종묘의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고려사』의 길례대사라는 제사의식에 “4월 보름에는 보리와 앵두를 드린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이 이어져 『세종실록』오례 길례의식조에 ”앵두, 살구를 변(籩)에다 담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종 13년(1518) 5월 18일에 조광조가 “백성들이 앵두, 자두, 황도를 바치는 데에 괴롭게 여기고 있다”고 임금에게 진언하고 있다. 이에 중종이 “외방(外方)에서 바치는 과물(果物)은 다만 천신(薦新)에만 쓰이는 것 뿐 이니, 이는 반드시 민간에다 많이 배정할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앵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제물로 쓰인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중종 7년(1512) 윤 5월 3일에 임금이 앵두를 승정원, 홍문관, 예문관에 내렸다는 기사가 있다. 이로보아 앵두가 조선시대에 귀한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앵두꽃은 중국과 티베트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지는 오래되어서 토착화된 향토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문물이 그러하듯 앵두꽃도 불교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꽃이라 생각된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에 앵두를 읊은 것으로 보아 고려 때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고려의 문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 앵두 맛이 시기가 초맛과 같다고 한 점으로 보아도 앵두꽃이 우리나라에서 가꾸어진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효심

 

세자인 문종이 경복궁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 매우 무성하였는데 익은 철을 기다려 세종께 드렸다. 세종은 앵두를 맛보고 기뻐하시기를 “바깥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중종 5년(1510) 3월 17일에 특진관 심정(沈貞)은 “문종이 앵두나무를 기르며 손수 뿌리에 물을 주고 그 열매를 세종께 드렸습니다. 어찌 진어할 다른 물건이 없겠습니까. 효도를 위해서는 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그런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다음글  
이전글 병꽃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