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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의 대면은 대화이다
애벌레 맘김윤희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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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일단 먹고 마셔야 합니다. 물질적 욕구를 채워줄 양식은 신체적 존재의 기반입니다. 인간은 먹고 마시기도 하지만 감정은 우리의 삶을 바람에 왕겨가 날리듯 흩어지기게 하기에 언어의 유희는 삶의 향유를 향해 우리를 노력 하도록 합니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얼굴 대면을 통해 주어집니다. 삶의 향유를 계속하다보면 그 안에서 소유가 더 강화된 욕망을 키우게 됩니다. 그 욕망의 향유는 하루를 일 년처럼 살 수 있고 한 시간을 일 년의 시간처럼 생각 할 수 있게 합니다.

매 순간 사물을 인식하며 나의 이성으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일상입니다. 모든 것은 나로 통해 출발할 때 드러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루어내야 하는 갈등은 도덕적 주체이며 끊임없이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의 대면의 대화여야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새로운 ‘지금’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는 것은 나에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며 이는 타인의 고통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인 것입니다.

 

대화의 내용에 따라 사람의 얼굴 현상은 매우 특이하게 변화되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유독 엄마의 얼굴 표정에 집중합니다.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얼굴 표정들은 대화이고 명령이기에 두려워 합니다. 엄마와의 얼굴 대면을 어떻게 하였느냐가 아이의 인성이 결정 될 수도 있습니다.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들은 그 사람의 절대적 경험들이 강조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성하고는 따로 놀기에 아이들은 당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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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만남은 일상적으로 만남의 사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만든 틀, 선입견들은 얼굴 담겨 있는 힘에 의해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쉽게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봐 주지 않으면 내가 마주봐주지 않으면 손잡아주지 않으면 안 되는 얼굴의 표정은 도덕성인 것입니다.

 

얼굴을 보면 이해 할 수 있기에 부모와 아이의 얼굴의 대면은 상대방의 인격적 대화를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바라볼 때 진정한 시간이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성적 노력이 아니라 얼굴을 보는 순간 아!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타인의 얼굴의 대면은 서로가 되어주는 상호적인 관계에서 사람들은 의미를 찾으며 큰 힘을 갖게 됩니다.

 

아무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은 부모 자식 관계이기에 따지지 않고 사랑을 쏟는 부모들은 얼굴 대면이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에 가려져 스쳐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이며 자기애라고 표현하며 살고 누리면서 즐기는 것 입니다.   삶은 환경에서 알게 모르게 내용들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놀이의 과정에서 모두의 권리이고, 만남이고, 변화를 주는 언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친구들의 얼굴의 대면을 통해 친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음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일부 사람들의 특권이 아님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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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의식주의 필요를 느껴 매우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필요에 따라서 해도 된다고 하는 것도 얼굴의 대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워갑니다. 현실을 변화 시킬 수 없는 거짓말은 소외적이거나 허튼소리들이 삶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허한 말은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없음을 알아갑니다. 대화는 헌신해야 되는 것도 알아 갑니다.

 

아이들이 놀이할 때 친구들이 갖고 있는 것들을 갑자기 빼앗아 버려 놀이의 흐름을 깨뜨리는 상황들이 가끔은 발생 됩니다. 이때 잘 보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아이의 시선은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빼앗을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남이 어떤 의식주 생활을 하느냐와 관계없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욕구들이 습관처럼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는 순간 자기하고만 관계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다수가 원하는 것을 얻고 아이가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생각하여 미리 준비를 해주며 살아가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호기심을 갖을 이유가 없고 내가 얻고자 다양한 각도로 노력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와의 진정한 소통보다는 부부의 소통보다는 모든 것이 아이의 부러움을 채워주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들이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현실은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일방적인 소통입니다.

 

대화는 반드시 앎의 대상에 관한 호기심이 필요하며 배움과 앎의 과정을 이해하였을 때 주변을 호기심과 최초의 기쁨으로 가져다가 대화로 전환 시키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나 만의 언어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적 경험이 없는 언어는 다양한 선율로 표현하기 보다는 현실을 표백해 버립니다.

 

  얼굴을 마주보며 대면하는 일상은 더 나아가  친구의 얼굴을 대면하면서 다른 입장과 다양한 사회적 계획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 집 부모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부모라는 환경으로 이미 획득한 지식으로 전환시키며 대화에 참여하게 될 수도 있고 참여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적인 앎이 없이는 미리 접해보지 않았기에 호기심도 없는데 어떻게 대화 할 수 있겠습니까? 헌데 부모들은 집단생활에서 개입과 대화의 주체가 되길 원합니다.

 

부모 역사의 앎의 과정이 개인적 성격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도 포함되어있어 부모 자신의 목소리와 경험에만 지나치게 몰입해 자기 이야기만 부모 자신의 목소리만낼 수 있습니다. 내 아이만큼은 그러지 않기 원하고 좋은 성향만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꼭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만 닮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는 규칙을 꼭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의 스트레스가 높은 이유는 두 개가 같이 사는 것 이여서 두 개의 감독을 끊임없이 받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삶의 모든 문제는 돈 이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어진 생각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욕망은 잘못 될까 잘못되지 않을까 생각 말고 무조건 해라 합니다.

 

욕망은 ‘잘 먹고 잘 산다’라고 말하는데 잘 먹고 사는 것만 가지고는 잘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잘 먹고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고 잘사는 것이 잘 먹고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맥을 못 추게 하는 말투인데‘ 밥은 먹고 산다’라든가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느냐’라는 말도 같은 종류입니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말투가 버릇이 되면 마음이 이들을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잘못하게 만들 수 있으며 대화의 축이 어긋나게 됩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또 다른 공간성으로 연장 됩니다. 부모의 환경이 잘못되어지면 경직된 관계구조인 패턴을 답습하게 된다 했습니다.

현대는 감정의 시대이고 사람 사는 것은 시대성과 같이 가야 됩니다. 부모와의 얼굴과 얼굴의 대면은 사회성의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친구를 보살필 줄 알며 그 능력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게 합니다. 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도와 줄 거란 믿음은 세상에 대한 긍정입니다. 물질을 채우고 지식을 넣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얼굴 대면이 더 중요하며 내 아이를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내며 잘 자라게 합니다.

 

아이들의 언어의 기술의 모든 변화는 싹을 틔우는 씨앗에서 일어난다면 그 싹이 친구들과 부모의 환경적 요소들입니다. 잘 발아 하지 못하면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표현되어 극단적인 행동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은 난데없는 결핍감을 가져오는 불안 심리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마음이 그것인데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시기심입니다. 아이들과의 관계성은 시기심이나 질투들의 정념적 불안들을 균형화 시키고, 의미를 찾게 되며 자신을 현실에 있게 합니다.

 

그리고 ‘ 나’를 ‘우리’로 발전 시켜 나갑니다.

 

머리와 뇌와 가슴이 따로 놀 때 도덕관의 요청에 의해서 갈등하는 부분들을 끊임없는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순도100% 순수가 있어야 자기 의지가 철저하게 나의 욕심에 의한 자기와 싸워야 합니다. 내 아이가 선한 의지를 포기 하는 것은 악인 것입니다. 배고픔과 주머니 속의 빵은 서로를 상쇄시키는 음수와 양수이고 위가 도둑과 강탈을 막아줄 튼튼한 금고라고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훗날 자신이 이뤄낸 일의 결실을 즐기려 가게 하는 것은 잔인한 법칙을 우리는 실감해야 한다. 역사와 삶속에서‘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행복은 동물적으로 서둘러서 되지 않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곤충의 허물 같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아이들이 배고픔과 힘듬도 참아 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자연을 알아가는 것은 새로 둥지를 트는 거와 같습니다.  힘듦을 잘 극복하여 지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지혜와 본능인 것 입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이며 내 아이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 박혀 있게 됩니다.

 

부모는 진실 된 사랑과 의사소통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식의 언어적 유희와 태도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진짜 이익을 이끌어내는 것은 부모의 선택인 것 입니다.

                               

 

 
지나친 다양성은 진득하게 있지 못하게 합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이미 사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