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커뮤니티

 
커뮤니티애벌레맘 생태일기
우리라는 감정은 신의 사랑 이다
애벌레 맘김윤희 2013-09-30
19351

 9월은  생태학교나 유치원도 챙겨야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생태학교는 8월 부터 태양열을 받으며 바쁘게 9월을 맞이하며 체험을 진행하면서 가을과 겨울 내년 봄을 동시에 준비를 합니다. 딸기 모종을 심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친 뒤에야 모종을 심게 됩니다.  딸기는 많은 준비성들이 요구 되어집니다. 수단그라스를 뿌려 자라게 한 뒤 다시 갈아 퇴비로 이용하고 다시 물을 뿌려 숙성을 시킨 후 또 다시 볏집등을 깐 후에도 여러 단계를 거치며 진행 됩니다.딸기는 심어 가면서도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농사는 '때'에 맞게 심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정신차리지 않고 챙기지 않으면 실패를 합니다. 심기 위해  많은 준비성과 사사로운  많은 일들이 교차되면서  감정의 희노애락이 저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체험은 비수기가 많아 생태학교를 경영하다 보면 경영 유지비나 인건비가 많이 들어 힘들어도  어쩔수 없이 딸기 농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차가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돈 많이 벌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체험학습만 하면 되지 딸기 까지 손을 댄다고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합니다. 저희 무늬만 화려하지 경제적 실속이 없으니 제 속을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것을 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올해도 이것도 욕심인가 하며  매년 고민했지만 올해 만큼 고민한적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직원들이  내 농사라는 맘으로 아니 전 직원들이 먹고 살아 가는 하나의 희망의 밥줄로  제대로 가꾸고 살펴 잘해 보겠다는 주인된 마음인  신의 사랑으로 접근해 주리라고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매년 딸기 농사는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했기에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해야 됩니다. 인건비 하고 겨울 경비만 나와도 감사한 일 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희망의 끈을 꽉 잡으며 올해는 모든 전 과정을 하나하나 챙겨  진정한 농사 꾼이 되어 보고자 합니다. 농사란 교통질서를 아는 거 하고 교통 질서를 지키는 거하고 다르듯이 교통 질서를 지켜가듯이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2주전부터 유치원 공사와 페인트 작업으로 9월은 쉬는 날이 없이 강행 하다보니 이제는 몸살이 났는데도 쉬어갈 수 있는 때가 아니기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온 몸이 쉼으로 머물러 달라는 신호가 와도 자신을 외면합니다. 지난 주 박사과정 종합시험과 영어 시험도 다 보고 나니 무거웠던 맘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시험을 보는데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으니 제 나이가 기억이 저장 되기 보다는 제가 살기 위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급한일에 가려져 있었던 일들이  또 다시 드러납니다. 하나의 짐을 내려 놓으면 또 다른 책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고통이고 삶이라고 하지만 저에 많은 일거리를 안겨주는 것도  이것 또한 '신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누구도 아무런 고통 없이 삶을 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밑바닥 까지 보여주는 거라 고통없는 삶을 원합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고통과 불행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고통은 감정 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바꾼다고 해서 즉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들뢰즈는 대중들이야 말로 감정을 움직인다 했듯이 인간의 삶은 이러한 상호 관계 안에서 이리저리 대중처럼 밀려다니며 이해 타산적인 사랑으로 서로를 무한정 굴절 시키면서 자신의 감정을 놓치며 살아 갑니다. 감정이란 우리 몸 속에 장치된 경보 장치 역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감정 돌보지 못하기에 감정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감정을 저버리고 잘남을 휘두르기에 실패의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 속에서 의식이 잘못 오도해서 내 의식은 설명을 하지 않으니까 잘못된 사유를 하게 되고 잘못된 감정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동물은 인식의 오류라는 여행을 하지 않는데 사람만이 두 손을 불끈 쥐고 결핍을 채워가기 바쁘게 살아간다. 사람들은 원래 평화롭게 살 수 있었는데 자기감정을 돌보지 못해 원래 없었던 원수를 대부분 자기가 만들기도 한다. 싸우는 것은 상대방을 좋게 해주려다 오해가 감정에 불을 지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진실 된 감정 사랑을 보여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힘들때는 식물과 곤충을 교감을 바라보고 제가 좋아하는 곤충의 애벌레를 바라보면서 저의 감정을 달랩니다. 요즘에는 많은 나비들을 기르며 기쁨을 얻는 것도 신이 저에게 준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감정은 가장 사사로운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감정의 세계는 가장 사사로운 세계이고 누구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세계인데도 일상에서 감정의 진실을 외면하게 되어 생각을 잘못하여 미움은 주입되고 원수도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너무 쉽게 말을 합니다. 타자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습관처럼 잘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감정이 자기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더 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볼려고 하지 않기에 본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짐이 되기도 합니다.저 역시 그동안의 많은 사단들은 감정의 실갱이였습니다. 상대방이 미운 것도 감정 때문에 힘들었고 가장 사랑해야 할 가까운 가족을 힘들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들은 이러한 감정은 노동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제가 동, 식물에 많은 관심도 그들의 감정보다는 아름다운 순수성을 바라보는 것이 편해서 아님 저의 일방적인 사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감정은 붙잡지 않으니까 어디로 자꾸 가는데 마음을 붙잡아야 감정을 붙잡아오는데 쉽지 않을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자기 이해 능력을 넘어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내 마음처럼 해주지 않을 때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얻기도 어렵지만 놓치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시간도 모르고 공간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많은 문제를 부딪히며 감정이  썩어서 문드러져야 소화가 되어지고 그 때서야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어짐을 경험하고 진화되어짐을 보며 우리의 감정은 그런 것이구나 합니다. 시련을 겪어야 사람이 큰다는 말이 저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내 자신의 의식이 잘못 오도해서 내 의식은 설명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사유를 하게 되고 잘못된 감정으로 하게 되고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은 감정의 진실들을 감정의 설명이 제대로 안될 때 원수처럼 보이게 합니다. 뒤따르는 사유와 행위는 우리의 감성을 거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교감이고 교차이며 진실 속에서만 통합니다. 저의 삶이 바쁘게 살아가도 견딜만 한것은 자연과의 교감이 있었기에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같습니다. 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절절하게 잘 들여다 보지 않았다면 인문학과 철학, 그외의 다양한 인접 학문을 접근하면서 제대로 감정을 보기 시작 했습니다. 저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삶의 조건부인 인간의 사랑에서 저의 고착된 생각으로 행복으로 인도되어지는 부분들도 현실에서 그렇지 않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사랑과의 갈등 속에서 저는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린적도 많습니다.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 인 것임을 압니다. 원인은 남이 아닌 내 탓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잘 관찰해서 내가 뭐에 걸려 있는 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신의 사랑은 저를 이렇게 돌봐줍니다. 가끔은 충족되지 않은 욕구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보이기도 힙니다. 그것들을 잘 만나서 충족시켜 줄 때 결핍감도 사라질 때 감정이 충만하리라봅니다. 맹자는 '충만을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한결 같이 주어져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늘 결핍감으로 그렇지 못합니다. 자기는 자기대로 없는 것이 없는 사람이 남이 남대로 꽉 차게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결핍을 느끼면서 빼앗으려 합니다. 사실 어디까지가 결핍인지 우린생각 안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여유는 자기가 챙기면 생기는 것이 여유이듯이 진실 된 감정도 우리 안에 있기에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신의 사랑인 것입니다. 너와 내가 분리가 없는 하나라는 느낌에서 나오는 사랑이 신의 사랑이다. 신의 사랑이 살아있다는 진실은 쉬지 않고 확인해 주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 확인해 주는 겁니다. 며칠후에 일하시는 아저씨 따님이 결혼을 하십니다. 정말 성실하시고 자신의 일처럼 일하시는 분이 하객으로 오실 분들이 없다며 고민을 하십니다. 그 분은 타인에게 부러움도 없습니다. 자기 감정에 충실하시고 자기를 잘 아시는 분 입니다. 그냥 열심히 하실 뿐입니다. 아저씨의 따님의 결혼을 진실되게 모두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이익을 주거나 기억력의 테스트에 길들여진 지식인이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객이 몰리고 돈도 넘쳐납니다.  이러한 분들을 존경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사회 구조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감정이 자기라고 아는 사람은 정신과 몸을 나눌 수 없음을 압니다. 인간의 감정을 아는 것은 신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도 자연입니다. 감정도 자연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입니다. 신의 사랑을 아는 것은 나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며 신은 자기 자신의 믿음이자 충만입니다.

 

신의 사랑이 있기에 지금까지 생태학교를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생태학교를 지킨다는 것도 갈수록 어렵습니다. 다행이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두물머리가 4대강 개발로 그 주변이 많은 부분들이 변화되어지고 있습니다. 두꺼비 서식지도 길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좀더 섬세하게  인간의 시각적인 요구에만 맞추는 개발이 아닌 그들의 삶도 그들의 공간성도 배려가 되는 개발이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두물머리에 신의 사랑이 머무는 공간성이길 두물머리의 원시성이 사라지지 않은 그 본성을 유지하는 공간성이길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자연을 통해 학문을 통해 온갖 틀이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고 그 만큼 더 가까이 더 직접적으으로 신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사랑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분류 하늘과 땅 우주라는 공간성도 넘어서 존재하게 합니다.

 

오늘도 너와 나의 다름을 초월하게 해주는 신의 사랑에 감사하며 신과 인간을 ‘자연’(우리)이라는 하나의 무리로 엮으며 진실된 감정을  신의 사랑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아름답게 자연과 교차 합니다.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은 스스로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움을 재구성합니다
미래로 향하게 하는 '악의 꽃'은 성찰을 통해 대화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