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커뮤니티

 
커뮤니티애벌레맘 생태일기
비교를 잘해야 인생이 헷갈리지 않는다
애벌레 맘김윤희 2013-09-30
19489

 

우린 만남을 통해 살아가면서 현란하게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비교’하고‘ 비교’ 당하기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제일 가깝게는 가족 입니다. 한 식구라는 말은 하나이고 같다. 라는 말입니다. 가족은 한 식구처럼 살고 바깥에는 남남처럼 사는데 문제는 가정에서 나옵니다. 한식구라고 생각하는데 다 생각만큼 싸지지 않습니다. 한 식구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발등이 찍힙니다. 한 식구는 다름입니다. 다 다릅니다. 남녀노소라는 다름이 한식구라는 믿음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각자가 다름을 존중해 주지 않고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데”하며 싸우고 난리 법석으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

하나라는 원칙이 하나라는 믿었던 가족이 깨져가도 도려낼 수 없는 게 가족인 것입니다. 하나라는 사실과 다름이라는 사실이 같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믿음이 깨지는 이유는 ‘나는 하나’라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이건 남인가 보다.’ 하는 어느 순간 유지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합니다. 같다 틀리다 동일하다. 다르다. 는 모든 교차 상황에서는 다 다른 것들이 만나는 것이 우리 일상의 기본 인 것입니다.

 

사실 만나서 싸우려면 공부할 필요가 없는데도 싸우면서 기를 쓰고 공부 하려고 하는 것은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내 정체성 내 모습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어 끊임없이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는 ‘비교’ 안 할 수 없기에 ‘비교’를 잘 해야 됩니다.

 

우린 자존심도 높이고 자존감도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도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가져도 되는데 하나는 부족하다고 하기 때문에 두 개로 가는 것이기에 인생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마음도 충족시킨다면 솔루션이 아닙니다. 해결책이 아닙니다. 인생의 고해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따르자니 몸이 울고, 몸을 따르자니 마음이 웁니다. 이게 ‘고해’입니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 생각을 잘못하면 괴롭습니다. 자존감은 남에게 비교해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나는 나야’라는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계기가 ‘나는 나다’가 자존감입니다.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 오냐의‘ 차이’ 입니다.

 

가끔씩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음으로 우겨 싸면서 조건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상황들을 많이 경험 합니다. 모든 일은 자존심을 버려야 성사가 됩니다. 자존심을 버린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자존심은 욕망과 성공, 성취를 통해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비교하는 감정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자존심의 결핍감은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그러한 자존심은 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질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합니다. 우린 항상 목표가 있을 때 단점이 보입니다.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장단점을 이야기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단점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넘쳐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안에서 바깥으로 벅차서 생수처럼 넘치는 행복이 자존감입니다.

 

삶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론 세뇌를 당하면서 자기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제거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능력이 있는데 능력을 발휘 될 수 있는 부분을 가리게 됩니다. 그래서 더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배고픔은 결핍감이 아닙니다. 배고프면 먹으면 되니까요. 결핍감은 계속 먹는데 또 먹는데도 배고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각자 만나는 현장에서 목적이 남을 죽이기보다는 살려야 합니다. 이 중간인 경쟁이라는 현실에서 다름의 모습으로 뭔가를 취하며 무리를 지어가는 만남의 교차 속에서 갈등이나 전쟁들을 이겨내려면 나 자신부터 기본인 든든한 바탕의 깔개를 바탕으로 그 위에 나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야 합니다. 저놈이 뭐하는지 모르면 왠지 껄끄럽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가 자기를 봐도 정체를 모르겠다는 상황도 있습니다. 정체를 모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도 다름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정체를 알기 위해 무리나 파당을 만들어 가며 싸웁니다. 그 안에서는 융합도 안 되는 전체주의에서 살아가지만 요.

 

아이들도 집단 또래라는 무리 안에서 기본의 바탕의 깔개를 깔아 갈 때 기민한 직관력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경험적 현실의 다양한 요소들이 가로막은 수많은 장애물들을 통과하며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또래 집단이라는 환경적 요소에서 같음과 다름 차이를 인식 할 때 존중하고 배워가는 것입니다. 유아기의 환경은 축복입니다. 이는 같은 조건에서 다른 조건이 있나보다 왠지‘ 아니 네’ 하는 순간 공부가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공부는 그때부터 이상함을 느낄 때 시작 됩니다. 성인이나 아이들 세계나 다 같습니다.

요즘에는 개인주의가 많은데 한 예로 아버지가 개인주의가 되면 아버지가 튕겨 나가기 때문에 가족이 모래알이 되어버립니다. 개인주의 사람은 뱃속 편안 힘 있는 사람이라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 됩니다. 다수주의나 개인주의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다 동일합니다. 둘 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충족이 될 때 행복이 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 아니면 전쟁입니다. 경쟁은 평화와 전쟁 사이에 중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에 경쟁의 논리가 있다는 것은 벽지로 우리의 앞을 싸 바르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린 미봉책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합당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동서고금이 통하는 것이 사랑인데 현실에서는 잘 실천 하는 것이 어렵나 봅니다.

 

우리의 삶은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자유로울 수 없는 비교는 자존심의 비교가 아니라 자존감의 비교 인 것입니다. 쌤통의 비교가 아니라 행복의 비교가 되어야 하는 교육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행복이 나의 불행이다. 라고 느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비교’에서 옵니다. 우리는 자존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스스로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공의 기준은 늘 바깥에 있기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하며 처절하게 달려가기 때문에 자존감은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비교’하는데서 있고 ‘빨리빨리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불행은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랑은 자기 이야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얘기가 없으면 머리가 터집니다. 자기 이야기가 없으면 남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존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우월한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두뇌 구조를 가졌다고 합니다. 내가 남보다 더 나은 부분을 찾았을 때 느끼는 쾌감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얻는다면 더 없이 유익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은밀하게 찾아 나섭니다.

 

열등감 극복과 자존감 회복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질투입니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질투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의 성공은 더 그렇습니다. 그 과정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상식적이면 더 더욱 그럴 텐데 그렇지 않더라도 흠집을 찾고 싶어 하는 게 인간 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세속적인 잣대로 인간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문화 속에서 젊음을 보냈습니다.

 

삶은 평생 치러야 할 긴 경쟁 레이스입니다. 경쟁 속에 내 아이들은 사단이 나지 않도록 챙기는 것 또한 부모의 책무입니다. 사마귀가 교미를 한 후 암컷이 수컷을 머리부터 잡아 먹습니다. 사마귀 수컷은 암컷에게 갉아 먹혀도 새끼를 위해 암컷에게 먹혀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안 그렇습니다

.

주역을 공부해 보면 아무리 좋은 괘라도 경계의 말이 있고, 아무리 안 좋은 괘도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은 없는 것입니다. 부모, 나, 형제는 하나니까요. 욕심이 들어가서 그 욕심 때문에 자존심이 물러날 때 물러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욕심을 제거하지 않은 문화에서 욕심을 제거하는 것은 자존심도 상황에 따라 버릴 줄 아는 것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며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낳게 됩니다.

 

부모들께서 어떻게 무엇을 보고 살아가면서 그 경험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소화하셨는지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경쟁이라는 사회를 힘차게 뚫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삶의 밑바닥이 호연지기가 깔려야 당당하게 갑니다. 의식의 밑바닥에 삶에 바탕을 깔아놓고 그 위에 삶이 운영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깔아놓은 방식대로 살게 되어 있어 바탕이 든든해야 집중력 있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 자신의 삶의 바탕이 미흡하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쌤통’을 하지 않은 마음이 자신의 자존감을 낳고 그 자존감으로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알게 해야 됩니다. 부모란 마음 바탕(욕심, 고정관념)을 빨리 걷어 낼 때 내 가족 내 아이를 아름답게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가 아님을알게 하고 실천하게 해야 합니다.

 

물의 모양은 이렇게 되었다가 저렇게 되었다가 때가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본래의 모습은 고향이라 기쁜 겁니다. 고향 가는 것이 기쁘지 않으면 비극입니다. 비극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본래를 좋아해야 합니다. 고향 가는 거는 천국행 기차표를 사는 거와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중요한 감각은 '눈'이라고 했습니다. '눈'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인은 눈을 감고 한마음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사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이미 사랑' 이다
생태학교의 생명성은 우리를 기분좋은 창조로 연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