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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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교의 생명성은 우리를 기분좋은 창조로 연결합니다.
애벌레 맘김윤희 201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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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교의 터는 가을의 수확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 바삐 움직입니다. 생태학교 곳곳에 아이들이 활동하기 좋은 공간성을 확보 하기위해 적절한 양지와 음지를 만들었습니다. 달콤한 딸기 수확을 위해 뜨거운 8월부터 내년 봄 딸기 따기를 위해 8월부터 하우스를 보완하고 밑바탕 작업을 시기에 맞추어 들어갔습니다. 겨울 김장을 위해 배추를 심고 무씨를 뿌립니다. 배추는 넉넉히 심어 겨울에 동물들의 먹이를 준비해 놓습니다.그리고 생태 학교 안에 물길을 만들고 아이들이 활동하기 좋은 공간성으로 한참 공사를 한편에서는 진행합니다. 10월 쯤에는 물기를 걸어볼 수 있을 겁니다. 아! 기쁜 소식은 멋진 토끼 한 마리가 식구가 되었습니다. 턱이 주머니처럼 나온 토끼는 처음 보았고 만들어놓은 장난감 인형 같습니다.

 

올봄 배추흰나비 번데기가 날씨로 인해 20% 정도만이 우화를 하여 나비 번데기를 준비하려 합니다. 일이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상황에 따라 해결에 나가는데 가끔은 헉하고 “아고 아고”가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김 광철 선생님께서 들으시고“ 이제는 김 대표도 늙어 가나 보네요.” 하는데 전 사실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러나 봅니다. 자주 튀어 나옵니다. 생태학교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걷게 되는데 이번에는 밤 늦게 까지 걸었더니 다리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이것 또한 과잉 인 것 같습니다.

 

금요일, 토요일은 윤희 생태 유치원 부자 야영 캠핑이 있었습니다. 매년 이맘 때 쯤 이루어지는 행사입니다.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도 하고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며 두물 머리 나루터도 돌아보고 캠프화이어도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나무에 불이 타오르지 않아 아쉬웠는데 별빛이 비춰주었습니다. 별빛 아래 아버지와 아이와의 대화는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 속에는 친숙한 것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았고 원시성을 부활 시켰습니다. 이렇게 자연이라는 공간성은 의미심장한 시간들을 선물하는 것 같습니다.

 

밤에는 아빠가 아이의 작은 손톱에 봉숭아 물도 들여 주면서 껍질이 아닌 진실의 낟알들을 고르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이튿날 점심에 연밥 만들어 점심도 먹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하였습니다. 모두가 즐거웠고 이러한 공간성에 초대되어진 것에 감사하며 양손에 자연에서 수학한 선물 한 꾸러미를 들고 돌아감을 보며 뿌듯했습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 인 것 같습니다.

 

토요일은 초록 교육 연대 학부모와 학생들 견학 왔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계시지만 양수리에서 멸종되었다가 다시 두물 머리 생태 학교에 부활된 꼬리 명주 나비에 대해 특별 강의도 해 주었습니다 여름형 나비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며 날아다닙니다. 학생들이 어찌나 신기해 하던지 아름다움은 너와나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뽕나무에 살아 있는 누에를 보고 신기해하였고 네발 나비 번데기를 보며 순금과 은이라고 하며 커다란 눈을 뜨고 서로 볼려고 하는 아이들이 자연 이였습니다.

 

돌아가는 학생들은 한손에 네발나비 기르기 선물을 들고 기쁘게 돌아갔습니다. 함께 오신 어머님들과는 몇 분 함께하였는데도 마치 하나가 되듯 보다 빠르고 쉽고 문제없는 만남으로 연결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뵙고 싶고 일하고 싶은 분 들이었습니다.

 

서울시 체험학습 담당자님도 오셔서 한 바퀴 돌면서 생태 교육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가시면서 그래도 이러한 생태학교 경기도 서울시에 한 두 군데 존재 할 거라고 하시며 소중한 공간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담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내년에나 시도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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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교육 연대 김 광철 대표님을 비롯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에 자연 교육에 만족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 분들은 저 멀리의 숲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현장에서 늘 함께 하시는 선생님들이십니다. 그리고 저를 가끔은 연혁적이면서 귀납적으로 살아가게 지원해 주십니다. 저희 생태학교 선생님들도 늦은 시간까지 기쁘게 배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생태 학교를 정리 하면서 개미를 관찰해 보았습니다. 개미 사회 집단이 마치 수학의 집합처럼 깔끔하게 이루어졌고, 굉장한 건축가이고 튼튼하고 견고한 집을 짓고, 개미는 크기에 비해 규모가 큽니다. 아주 쓸모에 맞는 집을 짓고 모든 것과 서로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복도의 편의성과 적합성에 걸맞게 교육받고 경험이 많은 안목으로 배열되고 나뉘어져 있음은 기미를 아는 것이 신묘해 보였고 만물을 잘 취하는 개미의 세계는 법칙과 같습니다.

 

저희 시대는 과학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시작 했을 무렵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께서 더 과학적이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의 과학 실험 도구가 미비해서 과학 실험보다는 자연 과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과학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 내면에서 활동했습니다. 저희 어린 시절은 스위스 시계같이 정교하고 정밀하게 이루어진 자연에서 다양한 수준 높은 인식 속에 살아왔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개미를 쫒아 다니며 개미집을 관찰하고 부수어가며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놀았습니다. 그리고 개미를 잡아 개미의 똥구멍을 빨아 먹으며 새콤한 향을 즐기며 다시 놓아주고 그렇게 놀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개미 보면 순간 친족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미는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줄 아는 사실은 지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것을 유명한 ‘프랭클린 박사’ 증명을 해주었고 그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별력이 없는 다른 어떤 생물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거닐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보았습니다. 진흙이 없으면 연꽃이 피지 못하듯이 진흙과 연꽃은 서로 도우면서 동거합니다. 진흙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여성의 체내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연꽃은 세밀하고 정확하게 원칙을 바탕으로 나온 것입니다. 연꽃은 진흙이라는 좋은 기회를 포착하므로서 멋진 아름다운 꽃을 피워 희망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원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뒤틀린 콤플렉스를 갖게 됩니다. 희망을 이루어도 만족이 없는 것처럼 요. 개미나 연꽃처럼 우린 그물코를 치듯이 얽혀 있는 의사소통인 관계인 다양한 동거를 통해 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수퍼마켓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유기농 다양한 종류의 야채들을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까지 기꺼이 구입하는 것은 서로 상보적 관계성이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이 사회의 희망 인 한 마음이라고 생각 합니다.

 

현대는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말은 오히려 빈약해졌다고들 합니다. 화폐는 신과 닮았다고들 합니다. 궁핍할 때는 ‘돈’만 있으면 하고 바랄 뿐 이였고 넉넉한 식량만 있으면 충분했고, 이런 것이 행복이다. 라고 했습니다. 과학의 발달의 원동력이 되어 생산성을 높였지만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현대 과학이나 교육, 부모의 자식 사랑의 마음은 포장된 경주용 도로를 만들기를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숲을 없애버리고 곧 바로 마을을 만들려는 식의 감각인 것입니다.

 

인생의 폭이 넓고 깊으신 분들은 한결같이 “모든 것은 마음이다.” 라고 합니다. 현대의 삶은 악전고투하며 화려한 빌려 온 옷에 지나지 않은 뭔가를 걸치고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갑니다. 시계가 선명해지는 듯 한 느낌 보다는 빛의 롤러로 눌러서 걸림돌에 걸리어 어정쩡하게 주춤거리다 윤리의 연결 고리가 끊어져 버리게 하는 경우를 근래는 더 많이 띄게 됩니다.

 

저희 시대는 거대한 먹이 사슬 안에 있는 관계 안에 있으면서 배불리 먹어 안락해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착취하고 살아왔습니다. 사람의 관계란 만족과 이득에 움직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득에 의해 인간관계를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듯 하면 삶이 뒤죽박죽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주위를 빙빙 돌다가 삶이 자칫 구경으로만 끝나버릴 수 있게 됩니다. “다녀왔습니다. 보고 왔습니다”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관계는 사람 됨됨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들은 정신과 감정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어떠한 이상을 제공하고, 인생의 여정을 떠나게 하고 그 길을 계속 걷게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외부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권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카멜레온처럼 주변의 색깔에 따라 본성도 바꾸어 버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타고난 기질은 숨어 있다가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격한 기질이 갑자기 전면에 나타날 때 이익과 만족과 상대방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게 됩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가치 있는 존재라는 착각을 합니다. 특히 생태학교를 돌아보며 살아있는 생명성을 접할 때 그렇습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존재함에 깊은 사랑을 소담스럽게 어루만지며 또 하나의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은 착각을 만들어 내고 기분 좋은 창조로 연결합니다. 사실 착각은 교육을 통해 착각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 착각에 의해 상상을 통해 발전 할 수 있다고 교육 받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교육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공상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사회성은 최고의 자연의 환경과 교육자에 의해 창조 되어 집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란 정신을 만족시켜주고 이득과 안락을 인정받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듯이 친구들의 마음을 알아 가게 됩니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만족 시키며 마음의 평안을 내부로 연결시켜 대칭성의 회복이 이루도록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 후에 자기의 인정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모든 다른 가치를 희생할 줄도 압니다.

 

관계를 잘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듯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고려되어진다면 마음자리인 바탕을 잘 깔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다양한 종류 여서 각양각색의 양심이 존재합니다. 외적인 영향력이 그렇게 만듭니다. 추구하는 단하나의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인정받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깨지는 요소들은 의무를 게을리 하게 되면 서로가 불편하게 만들어 냅니다. 부모의 의무를 통해 아이들은 의무를 기꺼이 기쁘게 보편성으로 가게 됩니다.

 

모든 교육은 외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그것의 대부분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사소하고 우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자연의 공간성은 자유로운 사고들로 꾸며지고 화려한 지知의 풍경들이 스쳐지나가는 멋진 풍경들을 놓치지 십상인데 생태교육은 그런 우연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어 삶을 유동적 지성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린 삶에서 이득을 얻게 되기 기대합니다. 이득을 얻게 하기위해 덕이 있는 삶을 살게 하기위해 좀 더 명료함과 정확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머리가 말끔해지게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밑동이 흔들리지 않은 시간으로 연결되어지게 합니다. 생태 교육은 자신이 이해하고 나서 바로 물이 힘차게 흐르게 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논리적 보편성을 인정해가며 보편화로 나아가 황금률의 관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비교를 잘해야 인생이 헷갈리지 않는다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우며 현재 내가 있는 곳이 내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