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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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애벌레맘 생태일기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우며 현재 내가 있는 곳이 내 자리이다.
관리자 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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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교 안에 아름다운 생태 학습원을 만들기 위해 불볕더위에도 거대한 포그레인은 거침없이 땅을 평정합니다. 그놈의 기계는 무서운 존재 같습니다. 포크레인에 의해 눕혀진 흙들은 열기로  달구어 집니다. 그 공간성에 나무들이 파헤쳐져 앙상한 공간이  얼마 있으면 물놀이 하기 좋은 공간의 탄생을 기대하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자연의 이미지도 시대성에 맞추어 과다하게 변화되고 소통하며 갈팡질팡하며 소비 되어가는데 적응하느라 애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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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이 자라는 곳에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애벌레나 자벌레가 몸을 굽히며 천천히 힘겹게 또는 부드럽게 쉬지 않고 나아갑니다. 굽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인 것입니다.어느날 곳곳을 살피다가 자벌레를 정말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굽힐 줄 모르고  투덜거리며 앞만 향해가며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 그 자리를 도망쳤습니다.

며칠 전에는 소나무 50주를 곳곳에 옯겨 심었습니다. 생태관 뒤뜰이 조금은 품격이 상승함에 흐믓합니다.땅에 묻혀지는 꽃창포를 일부 옯겨 놓았습니다.  내년 5월 말경에 보라색을 치장하며 드러낼 것입니다.7월에 공사하기 위해 옯겨 놓은 나무들이 물에 잠기어 많은 나무들이 죽어감에 맘이 아픕니다.  저를 태워 없애는 것 같습니다. 

다만 위안을 주는 것은 꼬리 명주 나비의 수가 올해 많이 늘어 아름다운 자태로 생태학교 들판위를 수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치가 서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물의 다양성은 셀 수 없는 많은 종들이 회복 되고 있습니다. 자연은 과잉이 되면 자신의 종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려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합니다. 다만 인간만이 과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자벌레처럼  매 순간 더 나아가기 위해 올 여름은 휴가를 조용히 사물을 관조하는 쉼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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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 그저 제가 있어야 할 곳에서 편안하게 깊은 심심함의 시간은 난초의 향기와 같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사회인으로 생활하다보니 모두 함께 시간을 내는 것이 이제는 어려워져 따로 국밥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시간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희 가정만이 아닌 이시대의 가족 해체 위기인 것 같습니다.

 

  몇 년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깊은 사색의 심심함으로 들어가 나름의 자유를 느끼였습니다. 그 자유가 저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지 못하였으며, 저를 안전한 곳으로 위치시켜주지는 못했습니다. 며칠 쉬다가 어딘가에 갈 수 있다는 것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묶여 있는 자유가 어쩌면 가장 안전한 자유 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어딘가에 편입되어 있지 않다면 받침대가 없는 것처럼 불안한 시간들이 엄습해 오는 것 같습니다. 유치원이나 생태학교에  향하는 발걸음이 기쁘고 행복 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이 된 것 같습니다.

 

전 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많이도 착취하였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소비 지상주의에 행복해 하고 허둥지둥 종종걸음으로 참으로 날쌔게 움직이였습니다.

사회라는 구조가 저를 칠면조처럼 분주한 활동으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성도 우리를 과도한 활동으로  피로와 소진으로 소화불량증상에 시달리게 합니다. 생태학교 나무들도 여름에 전지를 해주지 않으면 공기가 소통이 안되고 햇볕을 받지 못하는 부분의 가지는 죽어가버리기 때문에 10여일을 나무 전지에 매달립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다 동일 한것 같습니다. 나무 전지를 해 줬을 때 그 나무가 살아있는 생동감을 더 발휘함을 볼 때  우리의 삶은  이제는나무처럼 전지하여 적절함으로 가야 합니다.

 

자연에 놓여진 아이들은 즐거운 심심함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심심함이란 시간이 중요합니다. 심심함의 속에는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수건이고 이불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숨결이며 채취 입니다. 이는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을 성장시킵니다. 요즘 사람들은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 또한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혼자 있는 시간을 놔두지 못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사물의 향기도 없게 됩니다. 사물의 관조를 통해 아이들의 눈의 부산함 움직임을 중단 시킬 수 있습니다. 사색적 집중을 못하고 사물을 관조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훗날의 삶의 시간들이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니체가 ‘사색적 삶이 부활이다’는 말처럼 사색적인 삶을 통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니체는 이 세 가지를 고상한 문화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색적인 관찰은 오래 천천히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했습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정신성을 갖추기 위한 최초의 예비 교육입니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했습니다.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인 것입니다.

 

올 여름은 뜨거운 태양을 깔고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강렬한 태양입니다. 고추를 수확하신 농부들은 고추 말리기에 아주 좋은 날 입니다. 폭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풀들은 자라나 생물들이 통행할 수 없을 정도로 경계선이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강자는 하늘을 향해 자라납니다. 여름형의 나비들은 더욱 화려한 색채를 드러내며 드 넓은 공간성을 날아다닙니다.

 

날씨가 덥다보니 일은 하는 데도 성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름 방학은 짧고 특히 여름휴가는 더욱 더 짧아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름은 살아있는 소비자 같습니다. 소비를 멈추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물이 끓게 되면 변화가 생기는 자연의 법칙처럼 소비 또한 그렇습니다.

 

여름은 소비와 유행을 통해 그 동안 정지 상태에 있는 모든 것들을 깨부수어 변화시키는데 전념하는 능수능란하고 노련한 유혹자 같습니다. 여름은 갖가지 다양한 모습들로 가장 소박한 소비를 통해 다른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흥미롭습니다. 이 사회가 우리를 사색하게 머무르도록 놓아주지 않고 매 순간 여기와 저기의 더 나은 여기 다른 여기를 향해 가기만 하고, 진실한 공감들이 자꾸 협소 해지는 현대인들에게는 여름은 가장 활동적이면서 자연 안에서 사색을 통해 우리를 자연의 공간성에 머무르게 합니다.

 

현실은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듯이 모든 부분들이 여기와 저기의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어제의 새로움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접속하면서 삶을 꾸려 나갑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접속은 무차별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연결 되어 있고 보다 빠르고 쉽고 문제없는 만남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나 지난 아침보다 더 밝은 날이 올 것이다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며 아낌없이 즐거운 모험에 몸을 맡깁니다.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충만한 오늘날의 행복한 조건은 그리 오랫동안 지속 되지 못합니다. 인스턴트로 흘러가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급진전으로 가속화 되는 현실은 사물들이 더는 익숙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함께 공유하는 삶의 조건들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차이나는 삶은 우리를 갈팡질팡한 모습으로 보여 지게 하며 올 여름처럼 더운 날은 우리를 멀미하게 합니다. 자연도 인스턴트로와 함께 인공적으로 변해 감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진정한 의사소통을 제거 합니다.  일상에서 목표를 향한 앞으로 쏘기의 행진은 충분히 의지 할 만 한 요령들이 축적된 저장고도 사라지게 합니다. 휴가철의 광고를 보면 우리의 약한 정곡을 노려 공략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에 맞게 모든 길이 상점으로 이어져 모든 사람이 상점으로 향해 가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군중 속의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도취와 황홀경의 유혹’을 견뎌내게 해주는 효과적인 예방접종은 자연의 순서를 알게 함입니다.

 

지금의 현실은 유혹의 그물망이 정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많은 선택들과 기회들이 과잉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폰의 시대는 분명 다양한 층으로 이루어지면서도 두툼하고 빽빽한 원본의 모습과는 완전 다르게 복잡한 관계를 단순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고 가늘고 얄팍한 층으로 압축했습니다.  아이들은 대처하기에 아직 충분히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상품의 이미지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서 결국 매순간 그 아이들은 더 의기소침하게 몰아넣을 수도 있는 그러한 상황을 모면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대출회사 광고를 보면 무엇이든지 말만하면 쉽게 해결해주는 마술사 같습니다. 노력 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터치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얻을 수 있다 합니다. 마치 부모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하게 합니다. 이러한 광고를 많이 접하고 원하는 물질을 무엇이든지 손쉽게 획득되어짐의 아이들은 ‘자유의 새벽’이 열림은 ‘아이가 아닌 아이’로 자라게 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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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향기(나의 역사가 깃든 장소)가 있는 곳에서 자아는 자신과 통합할수 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가정과 직장으로 복귀하는 사람마다 휴가의 시간이 짧다며 휴가를 끝난 지금도 마치 관광객처럼 채널을 막 돌리듯 여기저기를 메뚜기 처럼 폴짝폴짝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시간도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정말로 빨라지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욱 분주해지기만 할 것입니다.  자신을 한 곳에 머무르지 못 한다면 삶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과 방향 설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시간은 산만해진 까닭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극히 사소하고 하찮은 사건에도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 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이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로 바삐 달려 갈 뿐입니다. 우린 시간과 함께 되돌아감이 없이 앞으로 전진하며 과거를 반복하기보다 미래를 따라 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잡아당겨' 여기'에 있게 합니다.

 

자유는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입니다.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입니다. 사람은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안정감 있는 성장을 하듯이 자연안에서 하나라는 가족안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성이' 내 가 있는 것이 내  자리' 인 것입니다. 묶여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집니다. 받침대가 없는 자유는 나의 시간을 분산시키고 균형을 깨뜨리고 어지럽게 날아다닙니다.

현대는 끊임없이 새로 출발해야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옵션. 새로운 버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삶이 빨라졌다고 합니다.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더 빨리 간다는 인상 또한 오늘날 사람들이 머무를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더 빨리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결국 죽기도 더 빨리 죽고 맙니다.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식 농사라 했습니다. 투자 효과가 즉각적으로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에 ‘때’를 놓친다. 라고 했습니다. 자식 농사의 지름길은 시대성과 맞게 부모가 성장했을 때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합니다.

 

행복의 감정을 불러오는 것은 자기 귀환입니다. 이렇게 더운 날은 늘 지나치게 감정에 흐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일관성 없이 변덕을 부려서도 안 됩니다. 말에 실속이 있고 행동에 일정함이 있어야  자기 귀환을 하게 됩니다.

 

자연은 인간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공기와 같습니다. 성인들의 일자리는 공기처럼 생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것처럼 아이들도 뭔가를 충분히 의지할만한 요령들이 축적될 수 있는 저장고 같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소속의 묶임은  신중하고 과감하게 모든 관계들을 진입 할 수 있게 하는 공기와 같은 것이  자연입니다.

생태체험은  다양한 경험의 알을 품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서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이해 하게 합니다. 체험의시간들은  생명의 불이 될 수 있으며 진실한 이야기들로 풀어나가는 통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이 있는 열려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생태학교의 생명성은 우리를 기분좋은 창조로 연결합니다.
두물머리 생태학교는 경험의 알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