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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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분좋은 자연처럼 흘러가게 합니다.
애벌레 맘김윤희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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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태양아래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을 비로소 생태학교 안에서 뼈 시리게 느낍니다. 어느 때 부터 단풍을 바라보면서 또 한해가 감을 아쉬워 합니다. 아마 세월을 잡고 싶나 봅니다. 해야 될일이 아직은 많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것 역시 욕심인데 아직은 젊어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이 한 치의 오차가 없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것도 기분입니다. 사람의 기분도 바람과 같습니다. 기분을 생각하니 조중빈 교수님이 그려집니다. 계절처럼 시시각각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말이 있지만 기분이 듣는다면 기분 좋을리 없다는 말씀을 잘 하십니다.

 

미치는 사람도 안 미치면 죽을 것 같아서 미치는 것이고 세상에 바보는 없으니 남을 바보라고 하는 그 사람이 잘못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든 바보라 불리든 상관없이 사람은 모두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 기분 제일 좋을 때는 사랑 받을 때입니다. 헌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본성에 어긋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특히 부부가 싸울 때  ‘살기는 살지만 별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라고  매번 마음에 없는 말을 내 뺃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니까요.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얼핏 생각할 때 자기에게서 끝나는 문제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군가를 원수로 여기지 않고서는 그의 사랑을 받지 않기로 결정 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워 죽겠는 사람이 손을 내밀 때 우리가 그 손을 흔쾌히 받아드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감정은 이렇게 속일 수도 없고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 준엄한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를 원수 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의 사랑 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반드시 그를 원수로 삼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원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받지 않기로 결심한 그 사람이 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사랑 받는 것이 평화입니다. 사랑 받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곧 그 사람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평화지 사랑 받는 것이 평화라고 하면 상식을 뒤집는 것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때 자칫 잘못 생각하면 누구를 사랑할지도 ‘내’가 정하고 어떻게 사랑해 줘야 할지도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사랑싸움이 이런 구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에게 잘해 주려다가 싸웁니다. 이 때 사랑하겠다는 마음만 앞선 나머지 정작 사랑받을 사람의 사정을 잘 살피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랑하는 ‘나’와 사랑 받을 ‘너’ 사이에 간격이 생깁니다.

 

사랑받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받으려 할 때는 오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 받는 것은 내 마음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의 사랑을 받는 것이니까요. ‘내’가 사랑 받는 주체인 것은 틀림없는데 ‘네’가 나를 사랑해 줘야 ‘내’가 사랑 받는 것이니까 나는 ‘네’ 사랑의 객체일 뿐입니다.  

 

‘나’가 ‘남편’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동시에 ‘남편’이 객체로서의 ‘나’를 사랑해 줘야 사랑이 완수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누구의 사랑을 받을지 어떻게 받을지 결정할 자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해 줄 ‘너’에게 달려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사랑이란 파당을 만들어내는 ‘사랑 노릇’이 됩니다. 상대방의 눈치만 살필 뿐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종입니다. 이러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은 분열과 파당과 배반이 있을 수 없고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그런데‘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런 무조건 사랑 노릇을 포기한 사람 사랑받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할 때 인간이 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는 뜻으로 서로 돕는다는 사랑은 보통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배반의 시작은 ‘세상이 남편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판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원리는 사는 것이 이렇게 팍팍해지고 막막해질 대 집 뛰쳐나갈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바로잡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다잡을 마음이란 ‘나는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소망)이고 바로 잡을 생각이란 ‘우리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리가 없어’라는 생각(믿음)입니다.

 

 

행복한 가족 관계는 ‘나와 너’ 사이에 틈새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정치이고 정치가 가정생활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이나 아이들은 모방하는 존재입니다. 모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삶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자연에 ‘지금 여기’에 가정생활에 충실할 때 내 아이가 당당하게 따스한 태양이 비춰지는 들판에 나가 뛰어 놀 수 있는 것입니다 .

아이는 말로 가르친 것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부모의 사랑이 드리워지고 현명함의 삶의 현장에서 체득되어진 경험을 통해 아이의 가슴의 공간성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교훈이 중요합니다.

‘네’가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네’가 있을 수 없는 공생의 삶을 겸허하게 인식하면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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